[정진실의 커피 한 잔 시 한 편] 이원자 시인의 '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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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실의 커피 한 잔 시 한 편] 이원자 시인의 '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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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고시각 2018.10.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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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글=정진실(시인·기장문인협회 사무국장)

<풍장風葬> -이원자


주어진 일 다 끝내고 나면
돌아갈 일만 남는 것인가

서늘한 가을 하늘빛 아래
나뭇잎들이 일제히 수의로 갈아입고 있다
저마다 마지막 혼으로 공들여 지은

원도 한도 없이 밝은 색
숨이 막힐 듯 곱고
눈이 아프도록 서럽게 깊다

진액을 다 쓰고
지극한 황홀을 얻은 몸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적막하게 놓여 있음에

훠이훠이
가뭇없이 거두어가는 바람의 손길

참으로 환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곡으로는
결코 가 닿을 수 없으리


#1.심고 가꾸고 거두는, 봄 여름 가을뿐만 아니라 찬 겨울에조차 후년에 심을 씨앗을 보살피고, 얼어붙은 밭을 걱정할 것 같은 시인은 ‘도시농부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면 힘든 농사일을 멀리할 것도 같은데, 온갖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시인은 시의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그래서 도시의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니 그렇게 순수함으로써 이질적인 조합으로 더욱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온갖 식물에 관해 모르는 게 없는, 고향 시골을 품고 살아가는 시인이다.

텃밭을 가꾸면서 식물의 모든 계절과 함께한 까닭으로 시인은 식물의 인간에 대한 보시를 보았고, 뜨거운 햇볕, 모진 비바람 다 견딘 후 모든 것 다 내어주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현상을 이렇게도 깊은 사유로 우리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이제 남은, 맑고 밝고 황홀한 쭉정이, 그를 거두어가는 것조차도 바람이다. 움튼 새싹을 어루만지고 간 그 부드러운 바람은 때가 되면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하며 거두어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의 진액을 남에게 베풀고 있는가? 얼마의 진액을 남에게 베풀고 갈 수 있을까? 모든 것 다 주고 가는 식물의 마지막 이 계절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읽음으로 훗날 나의 바람이 왔을 때 나는 통곡이 아닌 아름다운 미소 한 모금 지을 수 있을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2.이원자 시인은 기장문인협회 회원으로 정관읍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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