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은 '정관' 지명이 태어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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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은 '정관' 지명이 태어난 해"
  • 김항룡 기자
  • 송고시각 2018.07.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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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중앙공원에 생긴 정관읍 지명유래비 '눈길'
참석한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항룡 기자
정관읍 지명유래비석 건립제막식, 7월 6일 열려
 
<정관타임스Live/김항룡 기자>=정관읍지명유래비석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윤홍, 이하 추진위)에 따르면 정관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긴 것은 지난 1914년이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하북면에서 정관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추진위에 따르면 당시 새 이름을 정할 때 주민들은 소두방 봉우리와 소두방재를 떠올렸다. '소두방'은 토박이말로 솥뚜껑과 같은 말인데 솥뚜껑의 한자말인 정관으로 뜻이 모아져 지금의 이름이 됐다.
 
비문 모습. /김항룡 기자
김윤홍 추진위원장은 이날 식사를 통해 "지명유래비가 정관의 자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항룡 기자
'정관'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유래비를 중앙공원에서 만나 볼 수 있게 됐다.

정관읍지명유리비석건립추진위원회는 7월 6일 오전 정관 중앙공원에서 '정관읍 지명유래비석 건립 제막식'을 개최했다.

지명유래비석 제막으로 정관주민들은 공원에서 휴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정관의 유래를 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막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함께 유래비에 들어갈 문구 등을 정하는 일이 녹녹치 않았던 것.
우천 속에서 내빈들과 주민들이 정관읍 지명 유래비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김항룡 기자
비문 지은이인 허모종 시인. /김항룡 기자
비문 글씨를 쓴 김동성 서예가. /김항룡 기자
추진위는 역사 고증 등을 거쳐 사업 착수 1년여만에 유래비 제막에 성공했다.

문명수 부위원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정관이란 지명의 유래를 정확하게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역사학자 자문과 군지 등 역사를 바탕으로 소위원회와 정관주민자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오늘 제막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김윤홍 추진위원장은 "젊은 세대에게 지역의 유래를 알려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이 지명비를 보면서 정관에서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상직 국회의원과 오규석 기장군수, 황운철 기장군의회 의장, 지역 역사학자인 공태도 씨 등은 축전과 인사말 등을 통해 유래비 제막을 축하했으며, 시낭송가인 강여정 씨는 이날 비문을 낭독했다.
 

비문 지은이인 허모종 시인과 글씨를 쓴 김동성 서예가, 비석을 제작한 정동명 조각가, 유래비 제막에 힘을 보탠 이승우, 권상섭 전 군의원 등도 자리를 함께 해 유래비 제막의 의미를 기렸다.

구경민, 김민정 시의원과 군의원, 각계 내빈과 주민들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유래비 제막식을 지켜봤으며, 정관읍주민자치위원들은 궂은 날씨 속에서도 자원봉사, 제막식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한편, 정관읍 지명유래비석은 삼성디지털플라자 정관점 뒤편 정관 중앙공원 소나무 언덕쪽에 위치해 있다.  
내빈들이 비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항룡 기자
 
내빈들이 비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항룡 기자
 
제막식 모습.
 
제막식 모습.
 
정관읍주민자치위원들이 제막식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김항룡 기자
 
강여정 시낭송가가 비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항룡 기자
 
황운철 기장군의회 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항룡 기자
 
공태도 향토사학자가 즉석 축사를 하고 있다. /김항룡 기자
 
 
 
 
 
 
 
우천 속에서 내빈들과 주민들이 정관읍 지명 유래비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김항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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