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書談] 석정전다(石鼎煎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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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書談] 석정전다(石鼎煎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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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고시각 2019.06.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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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효원 박태만(서예가)

 報國無效老書生 (보국무효노서생)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못되는 늙은이가

 喫茶成癖無世情 (끽다성벽무세정) 차 마시는 습벽으로 세상을 잊었으니

 幽齋獨臥風雪夜 (유재독와풍설야) 눈 내리는 밤 서재에 홀로 누워

 愛聽石鼎松風聲 (애청석정송풍성) 돌솥에 찻물 끓는 소리만 듣나니

노서생은 포은(圃隱)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터. 조국 고려의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라보면서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스스로 한탄하고 있다. 그러니 세상일에 두었던 관심을 거두어들이고 싶기도 했겠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세상일을 잊느라 차를 마시는 것으로 벽(癖)을 이루었다고 했을까. 지독하게 치우쳐 즐겨하는 습관을 벽(癖)이라고 이르니 그야말로 고질병에 가까운 취미다.

밤은 깊어 가는데 눈보라까지 몰아치니 세상과 나는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듯하다. 차(茶) 하나로는 세상과 나를 격리시키기에 부족했던지 몰아치는 눈보라가, 그윽한 나의 서재와 세상을 다시 한 번 갈라놓았다. 돌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마치 솔숲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 같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끓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

언감생심 정몽주선생의 심정을 만분의 일이나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나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시를 되뇌어본다.

 

바깥은 세찬 눈보라가 날리는데

조용한 서실에 홀로 누웠다.

세상일을 어찌 터럭만큼이나마 모르랴만

스스로 차나 마시며 헛되이 살았다고 여겨

가끔은 세상일을 전혀 모른 체

내 울타리 밖으로 밀어 두기도 했다.

이제 바야흐로 달아오른 돌솥에서는

물 끓는 소리가 솔바람처럼 들려오니

찻주전자에 차를 담을 때인 듯...

 

나라 전체는 고사하고 내 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식만으로도 심란하다.

그나마 차라도 있어 갈증을 풀고 살아가니 고마울 밖에.

♦서예가 효원 박태만=서예가로, 기장에 거주하고 있다. 부산미술대전과 천태서예대전, 청남휘호대회 등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수십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했다. 묵우서숙 주재와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기장향교와 기장문화원 등에서 서예를 알리고 있다. seawoo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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