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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미의 육아칼럼
글=고은미 기장군육아종합지원센터장
[고은미의 육아칼럼] 자세히 오래 바라보다
2021. 03. 21 by 정관타임스Live
고은미 센터장
고은미 센터장

여전히 지속되는 ‘코로나 19’는 많은 부분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나마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되기까지는 인내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하다. 그럼에도 시간은 너무나 성실하게 흐르고 있다. 4월의 지면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땅 밖 세상 한가운데로 뻗어 나온 생명들의 몸 짓 소리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봄 기운에 맞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고 시끌벅적해야 하지만 정체된 듯, 조금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기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은 중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살다간 화가다. 농민, 땅, 아이들을 많이 그렸던 브뤼헐은 「아이들의 놀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남겼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보이는 넓은 공터에서 수 많은 아이들이 온갖 종류의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굴렁쇠 굴리기, 말타기, 팽이치기, 가마 태우기도 보인다. 현재는 브뤼헐이 관장으로 근무했던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이 즐겨했던 놀이가 내가 어렸을 적 마을 어귀에서 놀았던 모습과 똑 같다는 것이다. 분명 500여년 전 지구 저 편에서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아이들의 놀이가 동서고금을 떠나서 유사한 놀이 방법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또 하나, 브뤼헐이 살았던 16세기 유럽은 종교의식과 관련된 그림에 가치를 더 두었던 시대인데 소박하고 남루한 농민, 땅, 아이들의 모습 등 주변에서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모습이 어떻게 그림의 소재가 되었을까? 시대적으로 아직은 아동권리니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등의 인식이 싹트기도 전의 그림이라니 한번 더 마음이 쏠린다. 세대 차이가 크다는 우리 사회에서 놀이라는 주제로 접근해 본다면 할머니와 손주가 잘 통할 수 있는 지점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보의 바다에서 브뤼헐이 그린 「아이들의 놀이」를 검색하고 그림을 다운받아 아이랑 함께 내가 알고 있는 놀이 종류를 찾아보는 게임을 해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큰 화면에 그림을 띄워놓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알고 있는 놀이, 하고 싶은 놀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시간을 가져보고 바깥놀이에서 직접 놀이해보는 것도 흥미를 더해줄 거 같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250여 명에 달하고 놀이 종류도 90여 가지라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세세하게 그린 걸 보면 화가의 관찰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림이 명화가 되기 위해서는 화가의 마음부터 자세히 눈길을 주고, 마음을 쏟고,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떠올리게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처럼 사랑한다면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유아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미있는 타인은 관심 있는 대상을 자세히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 그것이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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