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필] 벚꽃, 화양연화(花樣年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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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필] 벚꽃, 화양연화(花樣年華)
  • 글=유혜경(정관노인복지관 시니어기자단)
  • 승인 2021.04.13 13:45
  • 댓글 0
  • 조회수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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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부산 기장으로 이사...고향 그리울 때 벚꽃으로 마음 달래
남편 외로움 달래줄 내가 그 벚꽃이 되리...

 

남편은 입버릇처럼 퇴직하고 나면 부산이나 아니면 근처로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부산 출생이지만 서울로 이사해서 50년이 넘도록 살았는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니. 부산에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땅 한 뙈기 사놓은 것도 아니어서 설마 했는데 퇴직하자 정말 이사를 하자고 나를 설득했다. 태어나서 60년이 다 되도록 살았던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 좀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과 함께라면 어디에 간들 살지 못하겠느냐 하는 용기가 생겼다.
부산 기장으로 이사를 하고 한동안은 바다를 보러 다니는 등 낯선 곳으로 이사한 설렘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겨울을 보내면서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나만 멀리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으로 살짝 우울증이 찾아왔다. '괜찮다', '좋다' 하면서도 왠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어느 날 부산 시내에 일이 있어서 다녀온 남편이 벚꽃이 피었더라면서 데리고 나가 주었다. 서울에선 여의도 윤중로에 가야 볼 수 있었던 벚꽃이 이곳에선 흔하게 많았다. 눈 가는 곳마다 온천지에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몇 차례 벚꽃을 보고 와서 우울증은 싹 사라져 버렸다.
그 뒤 남편은 해마다 봄이 오면 연례행사처럼 부산 곳곳의 벚꽃 명소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꽃을 봐도 덤덤한 사람이 벚꽃을 본다는 핑계로 운전을 못 하는 나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 덕분에 내가 고향에 돌아오기라도 한 듯 신이 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올해도 집 앞 공원과 좌광천에 몽글몽글 예쁘게 벚꽃이 피었다. 벚꽃이 피어도 심드렁했다. 코로나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예쁘게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 괜히 가슴 한구석이 에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이 별로 편치 않았다. 편찮으신 시어머니 수발하면서 갱년기도 무난하게 넘겼는데 이제야 내 마음에 사추기(思秋期)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남편이 어째 올해는 벚꽃 보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벚꽃 구경을 하러 가자기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나섰다. 병산마을이며 이곳저곳 벚꽃을 보고 오니 나의 우울한 마음은 조금씩 사라졌다. 나를 낫게 해준 것이 꼭 벚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아주는 관심과 배려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사이 벚꽃이 지고 있다. 바람이 불면 벚꽃이 하르르 눈처럼 사뿐히 쌓인다. 이제 올해 벚꽃도 끝이구나. 온 동네를 화사하게 수놓았던 벚꽃이 아쉬움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나온 날을 되짚어 본다고 해도 특출나게 아름다운 날들이 있던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지금이 나의 화양연화라고 생각하면서 당당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듯 괜히 위축되고 이런저런 일들로 남편에게 꽁해있었다. 나 혼자만 나이 드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서글펐다. 그랬던 마음이 벚꽃을 보면서 서서히 풀렸다.
내 마음이 이럴 때 그는 그렇지 않았겠는가. 비로소 투정도 하지 못하는 남편의 외로움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동안 남편이 나에게 활력을 찾게 해주었듯 이제는 내가 그의 벚꽃이 되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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