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유림의 활동 11] 기장향교 향안상고(機張鄕校 鄕案詳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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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유림의 활동 11] 기장향교 향안상고(機張鄕校 鄕案詳考)
  • 기장향교
  • 승인 2020.05.21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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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향교 향안(機張鄕校 鄕案)은 現在 남아있는 機張鄕校의 보존(保存)되어야 할 아주 중요(重要)한 고문서(古文書)이자  역사적 사료(歷史的史料)로써 그 가치(價値 )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機張鄕校 鄕案은 壬辰亂 以後(임진란이후) 至今으로 부터 四百三年전인 光海君 十年 戊午(1618)年 鄕案 과 三百七十四年전인 仁祖 二十四年 丙戌(1646)年 鄕案, 三百十八年전인 肅宗 二十八年 壬午(1702)年 鄕案이 남아있다.   
當時 鄕案의 記錄은 先代의 姓名만 記錄되어 있을 뿐 어떤 형태(形態)나 명목(名目)의 記錄은 남아있지 않다. 
수백년전(數百年前) 고을민의 出入으로 소위 말하는 國家에서 세 운 지방학교(地方學校)가 있었다는 데에 그 意義가 크며 비로소 향족(鄕族)이 誕生하는 契機를 마련했 으며 내향외향(內鄕外鄕)의 門中 이 區分되어 그 뚜렷함 을 알게 한다. 
아울러 學校의 유지보수(維持補修) 등 관학(官學) 으로 써의 기능과 역할(機能과 役割)에 기여(寄與)한 儒林의 記錄이 鄕案이기도 하다.
以下 內用은 性坡 李秀浩 原任典校께서 향안비(鄕案碑 )에 각자(刻字)한 內用을 발췌(拔萃)하여 그 意義를 되새 기고자 하며 鄕案碑를 세울 當時 제막고유문(除幕告由文)을 첨부(添附)한다.
“鄕案이란 원래 鄕地士族의 名簿이며, 그 시기 地方首領의 諮問機構이기도 하였다.
機張鄕校의 明倫堂 천정함(天井函)에 장닉(藏匿)되어 있었던 필사본네질(筆寫本四帙)에는 壬辰亂 때 燒失 된 鄕校를 25年후인 丁巳(1617)에 改築을 完成하고 그 다음해인 戊午年에 改築功勞者名單을 作成할 때 八家十三人으로 登載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重修할 때 마다 必要한 豫算을 鳩財함에 篤志家들의 의연금(義捐金)으로 이루어졌기에 丙戌年 以後에도 몇 차례 追錄되었다.
光復後 一九七五年 그 當時는 鄕案制度가 없어진지, 오래되었으나 本 鄕校에서는 內鄕外鄕差別이 있을 때 였으므로 校宮修理費用을 負擔하는 名分으로 外鄕家門十六家를 內鄕家門으로 迎入시키고 差別 없이 開放하 기로 機張儒林이 合議하여 該當家門의 입향조(入鄕祖) 또는 선대명의(先代名義)로 入錄하여 많은 後孫들이 參與할 수 있는 契機가 마련된 것이다.
機張鄕校에 保存된 鄕案은 鄕校의 重修保全에 功績이 있었던 분들의 名單으로서 陰記한 대로 總百四十七人이 시다.
現在는 國家에서 文化遺産保護次元으로 維持補修를 하고 있으나 當時는 地方儒林의 精誠이 아니였다면 鄕民啓導와 斯文道德을 崇尙하는 鄕校를 어찌 保全할 수 있었겠는가. 
이 歷史的인 所重한 장서(藏書)를 保存함 에 燒失 또는 紛失을 憂慮하여 이번에 機張儒林의 合議 로서 先賢들 의 지성업적(至誠業績)을 영세불망(永世不忘)하기 위하 여  一片貞石에 각민(刻珉)하여 白日下에 노정(露呈)함 으로서 後世 儒林에게 귀감(龜鑑)이 되기 를 바라는 마음 懇切하다.”

(西紀 二ㅇㅇ四年(甲申) 穀雨節機張儒林一同, 性坡 撰)
 
첨부 : 제막고유문
除幕告由文
 
維檀紀四千三百七十年歲次甲申八月丙申朔二十三日戊午 典校 李秀浩 敢昭告于
龍蛇倭亂 校宮燒失 再建改築 維持保全 樑上藏匿 先賢儒案 鄕儒史蹟 審議露呈 斯文道德 至誠業績 貞石刻銘 永世不忘
虔告謹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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