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진실 시인
기둥에 대한 예의
정진실
집 앞 공터에 가지런히 눕혀놓고
어디 실한 데나
향내 나는 것에 쓰이기를 바라며
제법 오래 뒀는데
도저히 무릎 칠만한 생각이 나지 않음을
나이 듦으로 치고
난로 땔감도 모자라는 김에
나 따시자고 보를, 기둥을 자르고 팼다
자르면서 돼지 잡는 소리와 함께
그 집안 할배의 꽃상여가 튀어나오고
패면서는 족두리 쓴 이빨 빠진 할매의 헛웃음이 갈라진다
촘촘한 나이테 사이사이
고드름처럼 박힌 아이들의 웃음 하나, 울음 둘
둥글게 휘감으며 타오르는 불꽃 속, 비치는 집안 내력
집을 버리고, 고향과의 매운 인연조차 끊은 사람은
무정하기도 무심하기도 했을 것이나
한 무더기 일가를 이뤄준 근본인
기둥을 태우는 일에는
잔을 올리고 읍揖이라도 해야 마음 편할 것 같고
예의일 것도 같은,
저작권자 © 기장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