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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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자
  • 정관타임스Live
  • 송고시각 2019.06.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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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두호 (성균관 감사)
김두호 (성균관 감사)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현상을 접하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서로의 주장을 펴곤 한다.

그런데 그 주장을 들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선대의 유전자를 엿볼 수 있다.

선동과 부추김을 하는 걸 보면 윗대를 상고할 수 있고 비판과 비평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윗대를 판단할 수 있다.

좋은 품종과 나쁜 품종을 선별할 때 반드시 필요악으로 구분하는 게 바로 유전자의 선택이다.

우리는 그 유전자를 디엔에이(DNA ; deoxyribonucleic acid)라 표현한다. 유전에 직접 관여하는 물질로 핵산의 하나. 디옥시리보핵산이라고도 한다.

"생명의 연속을 위해서는 똑같은 개체가 태어나야 하고 또 그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멘델 이후의 유전학은 이 물질의 정체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명심보감에 보면 "남을 해하면 또 다른 남이 나를 해할 수 있음을 그대는 성내지 말라" 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좋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악의적 선동으로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별 것 아닌 것도 부추김으로 감정을 격하게 하여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누를 범하기도 한다.

그 유전자를 보면 "아! 역시 피는 못 속이구나" 또는 "그렇지 그 피가 어디 가나" 하고 나쁜 유전자와 좋은 유전자를 평한다.

나는 아닌데 너로 인하여 라는….

또는 선동과 부추김에 의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화내동 하다보니 진실이 왜곡되어 가짜가 그럴듯하게 진짜로 꾸며져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로 인해 화해가 싸움으로 용서가 다툼으로 변질되곤 한다.

결국은 주위의 부추김과 선동질의 결과가 본질보다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서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만큼 참된 사랑은 없다고들 한다. 이유를 가지고 남의 행위를 지적하려는 논리적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유도 없이 남의 행위를 지적하며 깎아내리려 하는 비난은 하면 안 된다. 결국 그 비난을 통해 나 역시도 비난의 중심에 설 수 있고 그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우리들은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보복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보복은 보복을 낳는 법.

확실하게 상대방을 보복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건 용서하는 거다.

어떤 행위를 누구보다 앞서서 하고 다른 사람도 같은 행위를 하도록 부추김의 선동도 없어져야 한다.

이런저런 대립 되는 의견들이 오가면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지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분쟁일 뿐이다.

참 어렵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거짓 반성으로 진실을 호도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합당한 치유제는 용서임도 알아야 한다.

선동과 부추김의 유전자 역시 반성이 필요하며 용서가 처방전이다.

그대가 받은 상처 용서로 화답할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러는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임으로….

아름다운 유전자를 물려주자.


기고 또는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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