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웅 칼럼] 어뢰공장의 실체와 금 도굴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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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웅 칼럼] 어뢰공장의 실체와 금 도굴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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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고시각 2018.09.1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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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차웅 차성가연구회연구위원

‘진실은 하나밖에 없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은 논픽션작가인 정충제 선생이 지은 ‘실화황금백합작전(2010.1.10, 태웅출판사)’이란 책의 서두에서 밝힌 화두로 그의 행적을 들어다보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저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 같아 생동감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그의 행적이 상당한 팩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제가 황금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른다. 보물을 찾는 일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없이 많다. 황금에 눈먼 사람들은 보물을 찾고자 긴 항해를 하는 등 모험에 나서기도 하고 더 많은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 때론 목숨을 건다. 저자는 황금에 대한 발굴의 배신을 두고 도굴이라고 말한다.

금 도굴의 실체를 파헤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책이 발간된 지 8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확실한 물증이 없어서일까. 그러고 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거짓은 오래가지 않으며 이의 공방이 계속되는 한 어느 한쪽은 치명타를 입게 돼있다.

사건의 진원지는 부산 남구 문현4동 1291-1번지의 지하이다. 이 일대는 해방을 불과 3개월 앞둔 일제강점기 일본해군이 어뢰공장을 건설하던 비밀군사기지로서 일제가 중국으로부터 탈취한 엄청난 양의 금괴를 숨기고 이를 비밀에 붙이기 위해 징용된 약 1000명의 조선인을 산채로 매장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천인공노할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실은 2004.12.11 중앙지인 K신문에도 보도돼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일본군 대본영이 긴노유리(황금백합)작전을 지시했다는 근거는 미 CIA가 미 국방성의 자료실에서 찾아냄으로써 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어뢰공장과 금괴의 실체에 대하여는 당시 작전을 지휘했던 일본군 중좌 마하라 도시오가 조선인 군납업자에게 알렸고 이때 건네진 보물지도를 근거로 1987년 박정희대통령의 이발사 박수웅이 10년여에 걸쳐 탐사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저자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 파내려가던 중 뜻밖에도 일본을 상징하는 ‘이등충(伊藤忠)’이 표기된 황색포대가 수중카메라에 의해 포착됐다며 일제가 숨긴 금괴가 틀림없다고 단정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최초로 포대를 발견한 땐 2002.3.2이며 미국에서 직접 제작 공수해온 최첨단장비에 의거 지하16m 아래에 숨어있는 수평굴의 천장이 관통되자 지하에서 약 33m높이로 물기둥이 솟구쳤고 물속엔 포대가 있었는데 규격은 일정했으며 천장에서 5~10㎝정도의 빈공간만 남기고 5단으로 꽉 재어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동업자들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발굴하자는 저자를 따돌리고 도굴을 감행했다고 저자는 폭로하고 있다.

문현동의 금은 과연 도굴됐는가. 저자 자신이 이의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을 걸었던 것은 금 발굴자이면서도 동업자에 의해 사기와 무고 등의 혐의로 3년8개월의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어뢰공장의 존재와 금 도굴에 대하여는 저자로부터 많은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1945.7.3 조선총독부가 금이 묻혀있다는 문현동의 부지에 대해 해방을 한 달 남짓 두고 매입한 이유는 뭘까. 이는 비밀장소를 확보하기 위한 속셈일 가능성이 크다. 동업자들은 포세이돈 살베지란 회사를 차려 2002.5.13 부산 남포동 소재 피닉스호텔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문현4동매장물발굴사업에 대한 각서를 작성하면서 20%에서 0.5%까지 주주들에게 지분을 배분했다고 한다. 매장물의 내용은 무엇이며 왜 갑자기 회사를 만들고 지분을 명시했는지 의문이다.

어뢰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땅을 매수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매수자가 다이버로부터 비추는 지하굴속의 장면을 모니터로 통해 보던 중 황토색 포대에 한자로 된 세 글자가 눈에 띄자 보물임을 알고 대번에 땅을 사게 됐다는 것이다. 2002.5.28 지하탐사 땐 동업자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일제에 의해 희생된 징용자들을 위한 위령제가 아니면 금 발굴에 따른 안전기원제가 아니었을까.

2005년 지하탐사 때 작성된 광산굴의 전문업체인 한자엔지니어링의 소견서와 같이 화약으로 발파한 흔적으로 봐 지하 굴을 판 시기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현동지하에 저장된 물을 채취할 경우, 어뢰제조에 필요한 수은 등 18종의 물질이 나온다는 저자의 증언도 있었다. 이를 미뤄볼 때 어뢰공장임을 암시하는 증거가 아닐까.

문제는 이러한 저자의 증거제시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지목한 동업자들은 한 결 같이 어뢰공장과 이등충이 표기된 황색포대는 없었고 도굴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 현재로선 심증만 있을 뿐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로선 금의 존재를 알려줄 단서는 어뢰공장이기 때문에 이의 실체라도 밝히고야말겠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인 것 같다.

물론 금 도굴의 확인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징용자들의 유골을 찾는 일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선 문현동에 대한 광범위한 발굴조사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당시 징용자들은 전국에서 차출됐다는 말이 있고 보면 지역민들로선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 김차웅. 차성가연구회연구위원. 전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010-3889-4989

<칼럼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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