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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김차웅 칼럼] 기장서 서식하는 친환경 해양성식물 '잘피'
2017. 08. 02 by 김항룡 기자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2017년 7월 25일이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바닷가에 즐비한 맛집을 찾아 지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는 바람을 쐴 겸 죽도 곁에 있는 연죽교를 거닐었다. 죽도의 수림이 6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울창해보였다. 배를 타지 않고는 볼 수 없었던 죽도의 버팀목이 돼온 갯바위가 다리덕분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마침 육풍이 불어 간간함이 덜했고 소나기가 그친 뒤여서 더위가 한풀 꺾인 듯 했다.

죽도너머로 시원한 바다가 무언의 손짓을 한다. 기라성처럼 길게 늘어선 대변외항이 파도를 잠재우고 섬을 에워싸 안온함이 묻어난다. 옛날처럼 섬이 개방될 수만 있다면 이웃한 동부산관광단지와 더물어 명승지로서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한 가운데에 서자 마치 배를 탄 기분이다. 일렁이는 은빛 물결 속을 헤집어본다. 바로 그때 시선을 멈추게 한 것은 '잘피'라는 수초였으며 고기집이라도 되는 듯 수초사이로 모치 떼가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다. 나룻배의 길목이던 이곳이 잘피의 서식처여서 보물섬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반가움에 겨워 한마디 내뱉었다.

연화리 죽도섬 앞에서 서식하고 있는 잘피의 모습. 바다 속으로 마치 수풀을 이룬 듯 서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photo=정관타임스DB

“이게 오랜만에 보는 잘피가 아닌가?”
지인 중 한 분도 멈칫하며 말하였다.
“잘피? 어릴 때 많이 보던 몰캐이구만. 여기서 보다니 옛 생각이 나네.”
도대체 얼마 만에 들어보는 몰캐이인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몰캐이 속에 오롯이 녹아있어 40여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몰캐이라는 말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죽도와 마을사이에 널브려진 잘피의 군락지를 보는 순간 그리움이 솟구쳤고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놓은 것 같았다.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잘피를 지금에서야 볼 수 있다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몰캐이의 다른 말은 잘피이고 표준어는 거머리말(sea grass)로서 1960년대만 해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해초 중의 하나였다. 거머리말을 사전에서는 거머리말과의 해양성여러해살이 해초로서 수심 1~10m인 바다의 진흙에서 자라며 잎은 줄 모양으로 30~100㎝로서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은 식용한다고 돼있다.

그런데 거머리말은 바닷가 사람들도 생소하여 잘 알지 못한다. 거머리말을 일부 지방에서는 잘피 또는 진저리라 부르기도 하나 울산과 부산지방의 바닷가 사람들은 사투리로 몰캐이라 하였다. 몰캐이라는 어휘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몰캐이가 순수 우리말이고 보면 ‘말(몰의 본디 말)을 캔다’는 뜻에서 기장사람들이 주로 썼던 말이 아닌가 싶다.

몰캐이라 하면 원전이 들어선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서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사람들이 종이를 만든다하여 몰캐이를 수거해갔으며 해방이후 한 초등학교선생은 여름방학을 맞아 어촌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이때 학부모로부터 받은 선물이 말린 미역귀와 갓 캐온 몰캐이였다고 한다. 잘피는 예로부터 밭농사의 거름이었으며 어촌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던 식품이기도 하였다. 보릿고개시절만 해도 어촌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주요 간식거리였고 흉년 때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곡물 대신 구황식물이라 하여 조상들로부터 각광을 받아왔다.

잘피가 얻어지기까지는 주로 조그마한 배가 동원됐다. 도구는 대나무로 된 긴 장대였으며 두 손으로 장대 2개를 바닷물 깊숙이 밀어 넣어 잘피를 칭칭 감아 힘껏 당기면 뿌리 채 뽑힌다. 고리에서 수확한 잘피는 기호식품으로서 월내시장을 통해 유통됐다. 잘피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뿌리일수록 영양분이 많고 맛이 달짝지근하다. 줄기는 동네 아이들이 하모니카처럼 만들어 목에다 걸고 다니며 수시로 씹어댔다. 고리는 잘피의 대량 서식처였다. 고리와 길천리 사이는 내만인데다 모래와 함께 진흙밭으로서 잘피가 자라기에 알맞은 곳이다.

해수성현화식물인 잘피는 60여종이 전 세계의 연안에 분포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거머리말, 왕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 수거머리말, 애기거머리말, 새우말, 게바다말, 줄말 등 모두 8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피는 적조와 녹조현상과 같은 환경재해를 줄여주는 등 생태계와 수질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바다 숲 조성에도 이바지한다. 산업화가 되기 전 우리나라는 청정지역으로서 잘피가 자생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잘피는 어족에게 서식지와 함께 산란장 그리고 어린 물고기들에게 피난지가 되고 있고 조류의 속도를 감소시켜 바닷물속의 부유입자들을 가라앉힌다고 한다. 잘피는 1992년 세계자연보호연맹으로부터 보호종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힘입어 잘피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아쉽게도 기장군내에서는 보호대책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만큼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나 해양환경관리공단 등은 지금이라도 나서서 연죽교에다 안내문과 망원경을 설치, 학생들의 학습장소로 활용했으면 좋을 듯싶다.

사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자생하던 잘피가 산업화가 되면서 급격히 줄어들어 울산 방어진과 경남 거제의 연안 그리고 기장군내에는 일광면 학리 등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었다. 이렇게 잘피가 줄어든 것을 두고 바다의 오염보다 높아진 수온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 원전의 온배수배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죽도주변이 서식지여서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글=김차웅
・ 기장문화(기장문화원) 편집인(전)
・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전)
・ 일광면지편찬위원회상임위원(전)
・ 차성가연구회연구위원.

*칼럼 또는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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