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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옥의 시간여행
덩그런 공간에 세탁기와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뿐, 홀로 찾은 '24시간 세탁방' 사용방법 몰라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느낌...여인들의 수다떨던 빨래터가 그리운건 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옛 추억이 오버랩...뽀송뽀송 마른 세탁물 접하며 이용객 마음 알아
[김연옥의 시간여행] 처음 찾은 세탁방..."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2021. 06. 22 by 김연옥 기자

덩그러니 내가 혼자 서 있는 이곳은?
그 이름도 낯선 ‘24시간 세탁방’이다.

서울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던 중 요즘 세탁방을 자주 이용해 겨울 이불을 정리하고 있다며 편리한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상가의 간판에서 가끔 눈에 띄었지만 자취생이나 원룸에 사는 젊은이를 위한 곳이라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치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하나의 편리한 공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탁기에 들어가지 않아 가끔 세탁소에 맡겼던 카펫과 곳곳에 깔아두었던 러그 등을 모은 뒤 집 주변을 검색해 세탁방이라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난생처음 가본 곳이다. 그곳을 찾았을 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세탁기와 건조기만 몇 개 돌아가고 있었다. 벽면에 가득 붙여진 글들이 날 반겼지만 사용법을 모르니 난감할 뿐이었다.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무인도에 혼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무엇인가에 시선이 쏠렸다. 한참을 읽고 카드인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현금을 넣은 뒤에 포인트 적립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인으로 운영되는 게 많아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현실은 저만치 앞서가 있다.
1만 원을 적립하고 내용물에 따라 세탁기를 선택했다. 8종류의 빨래코스 중 하나를 택했다.  안마의자도 눈에 띄었지만 옆의 무인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카드로 뽑아 마시며 1시간가량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때 머릿속엔 어릴 적 우물가의 빨래터가 생각났다. 살던 동네 입구에는 어김없이 우물터가 있었다. 시끌벅적한 이웃 아줌마들이 담소를 나누던 곳. 그 목소리가 아련하다.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며 남편 흉도 보고, 자식 자랑도 했던 빨래터다. 각 집안의 소소한 이야기는 빨래터에서 여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여름에는 치마를 걷어 올려 허연 허벅지 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겨울에는 찬물에 손을 담그느라 터서 벌겋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자식이 많던 그 시절, 밤새 수북히 쌓인 빨래를 했던 어머니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1969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금성(지금의 LG)의 백조 세탁기가 선보였다. 한 세탁기 안에 세탁과 탈수의 기능이 둘로 나누어져, 세탁이 끝나면 꺼내 옆 칸의 탈수통으로 옮겨 수동으로 시간을 정해야만 했던 세탁기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지만 그땐 얼마나 편했던지 모두 내집에 세탁기를 갖는 게 꿈인 시절이다. 
세상은 변했따. 통돌이세탁기에서 드럼세탁기로, 나아가 삶는 기능과 항균기능, 건조기능을 다 갖춘 세탁기가 등장했다. 주부들을 삶도 그만큼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탁방에서 큰 이불을 해결할 수 있다. 깨끗이 살균 건조해 뽀송뽀송 건강을 책임질 수 있으니, 편안하게 느켜진다. 또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세탁방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옛 추억을 소환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깨끗한 세탁물을 접으면서 어느새 세탁방의 매력에 빠져든다.

글=김연옥(정관타임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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