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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향교, 은행나무 심어 공자의 문풍(文風) 기려
2020. 12. 28 by 기장향교

기장향교는 12월 10일(목) 은행나무를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이튿날 은행나무를 심어 공자(文風)의 문풍을 기렸다.
원로어르신들의 숙원에 힘입어 이곳 저곳 수소문 끝에 마땅한 나무를 찾게 되어 이날 식재를 완료했다. 
교궁(校宮)과 어울리는 나무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으나 어렵사리 나무를 구할 수 있었는데 나무는 일광해수욕장이 위치한 삼성리에서 동생과 이별하며 그 애틋한 마음을 글로 남긴 고산 윤선도 선생의 본향인 해남에서 공수해 왔다.   
수고(樹高)는 약 8m, 둘레는 30cm로, 구덩이 깊이 80cm, 둘레 2m 크기로 식재했다. 
기장향교에는 예전에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으나 서재와 명륜당의 처마와 지붕에 위해를 가하는 걸 보고 이은두 원임전교(1991~1994)당시 구석기 유림(56세) 등 유림재현께서 중지를 모아 베어내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 기록이 기장향교유도회지부 일광지회장이신 비봉 김창윤 회장께서 제공하신 40년 전 1980년 10월 1일 발간한 ‘재부구기장향인회’ 회보 2호 표지 사진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는 성묘 제향마당 서정(西庭)과 명륜당 서편 연총(煙窓)뒤 경계담장에 금일 식재한 나무보다 조금 더 큰 나무가 있었으나 담장을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문화재 위원들로부터 없애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받아 2014년도에 두 그루 다 베어버린 일도 있다.
무릇 향교에는 스승(孔夫子)의 유풍과 문풍을 이어 가기 위한 후학(後學), 유학(幼學)의 근간이 바로 행단을 세우는 것이다. 행단(杏壇)이란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로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중국 산동성 제녕시 공자 기념관 공묘(孔廟)에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杏壇)이란 비석이 아직도 존재한다.
조선시대 중반 화가인 현재 심사정(玄齎 沈師正 1707~1769)의 연비문행(燕飛聞杏)이 있으며 겸재 정선 (謙齋 鄭敾 1676년~ 1759년)의 그림 중 살구나무 아래 제자는 독서하고 공자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행단고슬(杏壇鼓瑟)이 있다. 이 때는 은행나무보다는 살구나무가 주로 쓰였다. 
이렇듯 교궁에는 그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표현들이 있다. 모두가 다 그 의미하는 바 크다 할 수 있다. 오늘 은행나무는 구입부터 식재까지 어려움을 전교, 유도회장, 사무국장,  성인수 총무수석장의, 왕금자 여성수석장의, 김병근 장의, 설경, 하재식 원임장의 등이 유림들의 숙원을 해소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울러 식재에는 전교와 유도회장, 성인수 총무수석, 왕금자 여성수석, 김상수 연락수석, 최종권, 성연호, 김진환 시장의께서 큰 봉사를 해주었다. 이후 표지석을 세울 때 유림제위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비봉 김창윤 회장이 제공한 재부구기장향인회 회보표지 모습. 멀리 서재 뒤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겸재 정선 선생의 행단고슬.
현재 심사정 선생의 연비문행
공묘에 있는 행단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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