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애용했던 '부산요'...기장도자문화가 바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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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애용했던 '부산요'...기장도자문화가 바탕됐다"
  • 김항룡 기자
  • 송고시각 2016.11.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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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기장차문화대학 초청강연서 주장
기장차문화대학 수강생들이 황구 소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photo=김항룡 기자
황구 소장
"훌륭한 도공·다양한 흙·가마터...기장은 도자문화 발달 적지
기장 곳곳에 다양한 도자문화 흔적...한글새김 분청사기 등 역사적 유물도 출토
차와 밀접 기장의 옛 도자문화 일본의 앞선 차 문화 대적할 가치 충분
역사적 고증과 연구...지역 도예인 등과 연대한 재연 노력, 관광자원화 가치 충분하다고 생각" 

<정관타임스Live/김항룡 기자>=기장차문화대학(학장 정오스님, 부학장 보혜스님)은 22일 저녁 장안사에서 '기장의 옛 도자문화'를 되짚어보는 초청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은 '기장의 도자와 부산요-최고의 물레쟁이 기장도공'이란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황구 소장은 이날 강연에서 그간 연구해온 기장의 도자문화에 대한 소개와 기장의 가마터 등 도자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이 '부산요'와 기장도예문화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photo=김항룡 기자
특히 용두산 공원 인근 자리에 있던 '부산요'와 기장의 도자문화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장안사 옆에 이름 있는 도공과 가마터가 있었기에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부산요'를 통해 부산과 도자기 거래를 했던 것"이라면서 "기장의 도자문화 재현과 관광산업화를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7년이면 '부산요'가 폐쇄된지 300년이 된다"면서 "당시 '부산요'에서 이런 그릇을 제작할 수 있었던 근원은 세종임금 당시다. 당시 장안사 주차장 부근엔 20여기의 완벽한 가마터가 있었고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즉 일본인들이 애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용두산공원 인근 '부산요'가 임진왜란 이후에도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기장을 중심으로 가마터와 도자기 제작을 위한 재료, 훌륭한 도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기장차문화대학 수강생들의 모습. photo=김항룡 기자
황구 소장은 특히 "고려다원이라 불리는 사발은 '일본사발'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혼이 들어 있는 우리사발"이라며  "현재 '기장사발'하면 알아주는 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기장도자에 대한 연구가 지속된다면 기장도예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기장차문화대학에는 정오 학장과 보혜 부학장, 정남권 기장경찰서장과 경찰관, 차문화대학 수강생 등 20여명이 함께 했다.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photo=김항룡 기자
경제적인 이유와 연구 부족 등으로 '기장의 도자역사'가 시간이 갈수록 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지역향토문화 연구가들 사이에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차인들을 중심으로 한 잊혀져가는 도자문화 재현노력이 어떤 빛을 발휘할 지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기장문화원은 내달 9일 동아대 박물관과 정관박물관에서 '기장 도자기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장차문화대학 수강생들의 모습. photo=김항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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