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균관 수복청 '근궁직청' 현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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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균관 수복청 '근궁직청' 현판의 의미
  • 기장향교
  • 송고시각 2021.06.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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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궁직청(芹宮直廳)

                                                           성두/ 김 두호

불초 제가 성균관을 바로알기 위해 성균관을 방문할 때마다 성균관 곳곳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균관 제기고에 방치된 '근궁직청' 현판을 발견해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나서 다시 한번 구성해 봤습니다.
사진은 저의 기록을 보고 성균관에서 유교신문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우리문화도 소중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묘(文廟)를 달리 이르는 말인 근궁(芹宮).
그 것을 관리하는 근궁직청(芹宮直廳).
왕조시대에는 수복(守僕)이 관리하였지요.

지방향교에서는 고직사(庫直舍)라 하여 수복과 고지기(庫지기)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양사재(養士齋)라 하여 조선 말기에 향교에서 그 고을 유생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던 곳이 있었으나 영조때에 이르러 향교의 교육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되어 교관이 없어지게 되고, 유생들이 서원과 서당 등의 사학기관으로 점락(漸落)하게 되자 지방의 수령들이 양사재, 흥학재(興學齋), 육영재(育英齋) 등을 세워 교육을 시켰습니다.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던 교직사와 고직사를 정립할 단서를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몇 해 전 기장향교 신삼문(내삼문) 해체 복원 시에 상량에 뚜렷하게 수복과 고지기가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고직사라 표현해야 함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수복과 고지기의 이름까지 적시된 걸 보고 반상의 서열이 뚜렷한 그 시대에 사람을 귀히 여긴 기장고을 선대 유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참으로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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