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미의 육아칼럼] 한마디 말에 잠 못 드는 그대에게
상태바
[고은미의 육아칼럼] 한마디 말에 잠 못 드는 그대에게
  • 정관타임스Live
  • 송고시각 2021.04.17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고은미(기장군육아종합지원센터장)
고은미 센터장

아주 오랫 만에 후배 A를 만났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연봉도 매우 높은 직장을 정리하고 늦은 나이에 보육교사가 되었던 친구입니다. 나는 나름 잘살고 있는 줄 알았던 A의 이런 저런 하소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A가 직장 새내기였다면 ‘원장은 왜 그럴까? 동료들은 너무 자기 욕심만 차린다’ 는 등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사회초년생다운 고민이라 생각하며 넘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나를 깊은 시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보육교사는 너무 고된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서 모든게 이해되고 다 참아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건 삶의 축복이라고까지 생각했다니 말입니다. 

해마다 업무량이 늘어날 때도 아이들을 위한 교사의 노력 즈음으로 해석했던 것이지요. 어린이집 평가를 받는다고 하면 행여나 내가 실수해서 점수 못 받을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보육일지도 기본 페이지 이상을 넘기기 일쑤였구요. 잠시 앉을 틈조차 없는 일과 속에서 편안하게 상호작용을 하라지만 아이들의 다툼이나 놀이에서 소외된 아이는 없나 아직 출석하지 않은 아이 챙겨보고 가정과 연락해서 확인하기까지 교실 안을 둘러보며 온갖 생각들이 스치는 통에 긴장이 된다구요. 3~4월은 아이들 적응하는 기간임에도 10여개 기관에서 쏟아지는 지도점검이니 모니터링이니 하는 것도 받아야 하고요. 특별히 방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과 전문교육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또 제출하라는 서류는 왜 그리 많은지, 컴퓨터를 다시 공부해야겠다 생각했다지요. 차량 당번이라도 있는 날에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기 위해 아침밥을 꼭 챙겨먹으려 했고요. 알림장을 잘 적어주려고 사진까지 찍다보니 이것도 고도의 노력이 필요하더라고 했지요. 
 

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으로 제대로 교사교육을 받기도 어려운 시기에 부모들의 인식 변화 없이 교사가 일선에서 부딪혀야 하는 건 어깨가 무거운 일이라구요. 보육교사는 짊어질 게 너무 많은 직업인거 같다고 했지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되물었지요. 지금은 보육교사 수난시대 같다고 말하는 후배 A. 보육교사는 아이를 사랑해서 선택한 직업인데 이미 위험한 직업, 무서운 직업이 되어버린 거 같다는 A의 말을 듣고 있던 나도 참 할 말이 없었습니다. 
 

후배 A는 보육현장의 정말 힘든 상황은 따로 있다며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머리끝이 솟는게 이런거구나 느낀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의 섭섭해함과 거센 항의도 당연 이해한다고 했지요. 그 과정에서 심한 말이 오고가더라도 오롯이 내 몫으로 참을 수 있고 나를 다독여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다짐을 해보지만 그것도 옛말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뛰어가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생긴 멍자욱을 설명하는 교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동학대라며 CCTV 보자고 할 때 정말이지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는 것입니다. 보육교사는 평소에는 잠재적 범죄자이고 아동학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되어버려서 억울하다고 말할 곳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동학대라는 말은 범죄 관련 용어인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 씩 듣고 살아야 한다는게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어서 안아줄때도 혹시 확 끌어당기는 것으로 CCTV에 비춰질까봐 한번 더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한마디, 아동학대라는 말을 듣고 잠을 설쳤다는 보육교사 A. 처음 선생님, 엄마같은 선생님이라는 보육교사에게도 인권이 있는거냐고 나에게 물었지요.
 

언젠부터인가 우리는 아이의 어린이집 하루가 행복했나를 묻기보다는 내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으면 절대 넘어가지 못하겠다는 시선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절대 다수의 부모들은 보육교직원과 공동의 목적을 가진 동반자로서 소통하며 관계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다 그렇게 컸느니, 적절하지 못한 환경 탓임에도 넘어지고 다치는 사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게 절대 아닙니다. 매번 듣기에도 소름 돋는 아동학대 사건이 우리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등 필요 이상의 듣기 좋은 메시지를 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폭력은 범죄행위로 다루어야 하고 하루일과는 교육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질은 다양한 경험과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본성은 생명의 근원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도전과 모험을 빼앗을 자유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자문해 볼 일입니다. 한마디 말에 잠 못드는 그대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는 사실만 확연한 오늘입니다. 아쉽지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