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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書談] 막존지해...지식으로 이해하려 하지말라글=효원 박태만(서예가)
김임선 기자 | 승인2019.05.01 16:12 | 조회수 : 339
신광송(神光頌) -2016년 해서(楷書) 25×180cm×2. by 박태만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煇猷)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莫存知解)

“신묘한 불성광명(佛性光明)은 어둡지 않아 영원히 빛나니, 부처님 법 닦는 이 문중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의 분별 따위는 던져버려라.”

원(元)나라의 선지식 중봉선사(中峰 明本 1263~1323)의 게송(불교시의 한 형식)이다.



이 얼마나 가멸찬 꾸짖음인가!
선사(참선하여 진리를 통달한 스님)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하려 정해 둔 거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머무는 곳이 있었다. 이런 곳들을 환주암(幻住庵)이라고 불렀다. 허깨비처럼 상(相) 없이 머무는 곳이니 제대로 된 문이나 있었을 것이며, 문이 없으니 글씨 한줄 걸어둘 기둥도 없었으련만 게송은 천년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빛난다.

 

사진의 주련(시구나 문장을 종이나 판자에 새겨 기둥에 걸어 둔 것)이 걸려있는 곳은 대구 현응선원이다.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들면 조실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대비암이 나오고, 그곳에서 걸어서 올라가면 20분쯤의 거리에 성전암이 있다. 근세의 선지식 성철스님이 8년간 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정진했던 현응선원이 자리한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아찔한 바위를 이고 선 관음전이 있고, 그 곁에 현응선원이 있다. 2007년 화재로 소실 된 것을 지금의 선원장 벽담스님이 복원하였으며, 스님들의 좋은 수행처가 되고 있다. 현응선원을 중창하고도 몇 년을 마음에 담았다가 또 한 가지 회향한 일이 있으니, 암자에 불이문을 세운 것이다. 불이문을 세우고도 수년간을 편액도 주련도 없이 지내다가 2016년도에 마침내 편액을 달고 주련을 걸었다.

대비암 조실스님도 편액이며 주련 글씨 쓰기를 사양하고, 뜨거운 여름 하안거 중이던 젊은 수좌가 추천한 내 글씨를 어른스님들이 흔쾌히 허락하셨으니 시절인연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편액 모습. 즉, 문위에 거는 액자 모습.

서슬 퍼렇게 결기 품은 중봉명본 선사의 게송을,
눈 푸른 납자 성철스님의 철두철미한 수행정신이 스며있는 곳에다 걸어야하니
글씨 또한 일도양단으로 쓸 수밖에···.

 

♦서예가 효원 박태만=서예가로, 기장에 거주하고 있다. 부산미술대전과 천태서예대전, 청남휘호대회 등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수십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했다. 묵우서숙 주재와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기장향교와 기장문화원 등에서 서예를 알리고 있다. seawoo77@hanmail.net

 

 


김임선 기자  iim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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