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실의 커피한잔 시 한편]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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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실의 커피한잔 시 한편]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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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고시각 2018.11.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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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진실 시인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집 <순간의 꽃> 문학동네 2001년

 

귀향을 결정한 후 2009년 11월, 부산에서는 설악산 등산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여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설악산 등산을 하기로 했다. 백담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후 등산이 시작되었다. 긴 세월을 머금은 크고 작은 돌들이 넓게 펼쳐진 백담계곡, 그 넓음을 채우고 있는 많은 돌탑… 쌓은 모든 이가 돌 하나에 소망 하나씩 담아 정성껏 쌓았을 돌탑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걸음을 옮기다 본 길가에 다소곳이 자리한 돌에 새겨진 짧은 시 한 편. ‘아~~~’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조그만 탄성,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땐 시를 쓰겠다,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냥 고향 시골에 가서 소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위의 시를 11월의 가을 산에서 내려올 때가 아닌, 올라갈 때 보고 말았다.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도 시인은 어느 하산길 길섶에 수줍게 피어있는 들국화 한 송이를 보지 않았을까…

인생의 오르막, 젊을 때 보지 못하는 것을 인생의 내리막에 볼 수 있는, 알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있을 수 있다. 어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내일 반짝하고 생각날 때가 있지 않은가. 오늘 당장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 끓어오르는 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는가. 올라갈 때 보지 못했다 해도, 내려올 때 볼 수 있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야겠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우리는 길을 나서야 한다. 수줍게 피어있는 작은 꽃을 찾아 미소 한번 띨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들국화가 잘 어울리는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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