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실의 커피 한잔 시 한편] 정을필 시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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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실의 커피 한잔 시 한편] 정을필 시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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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고시각 2018.09.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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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진실(시인·기장문인협회 사무국장)
<풍경> -정을필
 
비가 몸을 풀고 간 날에는
어디를 보아도 음악이 들어있다
가느다란 신경을 온 잎에 펼쳐놓고
우주의 신호음을 포착하고 있는 나무
그 가지 끝은 일순 알알이 투명한 사리로 빛난다
눈부신 물방울 연등의 행렬에
절로 합장하게 되는 이 순간
머리칼 휘어잡던 내 안의 절망들 고요히 스러지고
모퉁이 돌아나가는 기차소리에
그리운 이들 새록새록 되살아나
아롱아롱 풍경으로 물살져 온다
다 씻어내지 못한 고열이건만
애잔하게 숨 쉬고 있었던 이 희열
매 순간 생 앞에 절박하지 못했음에
순교자처럼 쪼그려 앉으니
가슴에서는 박새의 날갯소리 쉼 없다
한 포기 문장을 쓰다듬고 일어서면
저만치서 환해지는 길
다시금 총총거릴 내 온전한 발걸음 또한
저 나뭇가지 위 투명한 사리들이어라
 
#1.기장읍 교리, 시인의 집 옆에는 동해남부선 기찻길이 있다. 옛이야기가 흐를듯한 기찻길 옆에 는 여기저기 밭이 있어 여름철에는 시인의 키보다 크게 옥수수가 자랐고 계절을 바꾸려는 듯 고추는 붉게 익어간다. 여름철 새벽녘, 멀리 가는 기차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듯, 그래서 아 쉬운 듯 모퉁이를 돌아가며 기적을 울렸다. 시인은 기적소리 흐르는 그 기찻길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가 보다.
기차 떠난 자리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면 시인은 들길을 걷곤 한다. 지난 어느 봄비 그친 날 오후, 길가의 나무가지 끝마다 영롱한 봄비를 머금었던 버드나무. 그 버드나무 가지 마다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은 초파일연등이 되어 투명한 사리로 빛나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무더운 이 여름날 시인은 그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다 영롱했던 그 물방울을 찾듯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제 그 방울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 시인은 자신 만의 음악으로 탄생시켜 시인의 영혼을 두드리게 하고 있다. 시인 스스로 무릎을 조아리지 않 을 수 없었던 깊고 긴 상념. 이제 용서와 자비를 되뇌며, 시인 자신을 위한 시 한 편이 있다 면 바로 위 시가 그리고 있는 풍경일 것이다.
 
#2.정을필 시인은 기장군 철마면 출생으로 문예한국으로 등단했습니다. 기장문인협회 회원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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